전부터 했던 게임들을 쭉 적어 놔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 게임을 가장 먼저 리뷰하게 되었습니다. 한글화까지 했는데 아무 기록도 안 남기는 것도 이상하니까요.

 

먼저, 이 리뷰는 해당 게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혹시 아직 이 게임을 해보지 않으셨다면, 지금 플레이하러 가세요! 한글 패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스탠리 패러블에 대한 약한 스포일러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고 오셨거나, 하실 생각이 없으시거나, 뭐 어쨌든 스포일러가 상관없으시다면...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게임은 '스탠리 패러블' 제작팀에 소속되어 있던 William Pugh가 자신의 회사를 만들고 나서 만든 첫 번째 게임입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2021년이고, 이 게임이 출시된 건 2015년이니 거진 6년이나 지나버린 리뷰네요. 이 게임을 한글패치 하면서 정말 여러 번 플레이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사항들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리뷰에 앞서 그 점들을 미리 적어 두는 게 순서인 것 같네요. 

 

우선, 이 게임은 일종의 ARG를 거친 끝에 공개되었습니다. 물론 2015년에 했었죠. 따라서 지금은 그 흔적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reddit에 그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해당 링크로 가시면 잘 정리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어느 레딧 유저가 만든, 마인드맵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ARG에 쓰였던 사이트가 아직도 남아 있기도 합니다. 사실, 게임 내에서도 그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게임의 마지막, 기타 상호작용 부서 바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종이

게임 클라이막스 즈음에서, MAYFLOWERNETWORKING.COM 이라고 적혀 있는 문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페이지입니다. 여기로 리다이렉트 되죠. 가시면 마치 오류가 나서 깨진 것처럼 보이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이라면, mayflower-error를 admin으로 바꾸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금방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건 흔적일 뿐이고, 들어가시면 여러 이메일들을 읽으실 수 있지만 그것뿐입니다. 저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애초에, 이 게임은 거대한 마케팅이었던 거죠. 본인의 스튜디오를 홍보하기 위해서 ARG를 진행하여, 기대감을 증폭시킨 뒤 게임을 공개하는 식으로요.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게임성에 대해서도 이해가 가고는 합니다. 

 

이 게임은 15분짜리 짧은 농담 같은 게임입니다. 게임을 실행하면, 게임의 팁들이 화면에 나옵니다. 예를 들면, '이 저택은 매우 커서, 경비원들이 분명 모든 직원들의 이름을 알지는 못할 겁니다.' 같은 것들이죠. 마치 진짜 게임을 실행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갑자기 오류 화면이 나오더니, 플레이어는 다른 공간으로 가게 됩니다. 나레이터 - 게임 내부적 표현으로는 스테이지 매니저 라고 써 있습니다. - 는 플레이어가 온 것을 보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알고 보니, 플레이어가 두 명인 거죠. 한 명은 진짜 게임, 즉 진짜 Dr. Langeskov, The Tiger, and The Terribly Cursed Emerald: A Whirlwind Heist를 플레이하고 있고, 우리는 그 게임을 준비하는 쪽으로 오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 게임을 준비하는 쪽은 현재 파업 상태입니다. 곳곳에 시위에 쓰인 듯한 피캣들이 있고, 각 부서의 책상에 보면 사직서들이 놓여 있죠. 심지어 스팀의 게임 설명 칸도 자세히 읽어보면, 쓰던 사람이 설명을 쓰다 말고 파업하러 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게임을 하는 동안 한 명의 직원도 만나지 못합니다. 나레이터는 게임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 플레이어에게 부탁을 하게 됩니다. 플레이어는 나레이터의 지시를 따라서, ( 또는 일부러 다르게 하면서 ) 진짜 게임 안에 있는 플레이어를 위해 여러 장치들을 조작하게 되죠. 결국 게임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은 원래 하려던 게임은 보지도 못합니다. 

 

분명히, 더 잘 될 수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진짜 게임의 단편이라도 보여 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스탠리 패러블에서 포탈이나 마인크래프트를 할 수 있게 되는 것과 비슷하게요. 그랬으면 아마도, 훨씬 더 깊이 있었겠죠. 하지만 이건 무료게임이고, 무료게임이 가질 수 있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농담에서 왜 담고 있는 함의가 없냐고, 더 다양한 등장인물은 없냐고 불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런 게임을 저는 일종의 안티플롯 게임이라고 분류합니다. 우리가 게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을, 비틀고 부수면서 재미를 주는 유형의 게임인 거죠. 스탠리 패러블이 그 좋은 예시이기도 하고, 몇몇 게임들이 이러한 요소를 차용합니다. 메타게임적 요소라고도 하지요. 아마 가장 유명한 것은 '언더테일' 같네요. 

 

하지만 이런 안티플롯적 요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플롯이 있어야 성립한다는 점이죠. 따라서, 안티플롯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플롯이 필수입니다. 언더테일을 예로 들어보자면, 게임에서 등장하는 모든 메타게임적 요소들은, 우리가 그 게임을 하고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효과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렝게스코브 박사' 게임에서는, 그 플롯을 구성해 줄 게임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갑자기 안티플롯에 던져진 것이죠. 따라서,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플롯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잠입액션 게임을 많이 플레이 한 플레이어라면, 자신의 경험을 이 게임에 투영하면서 즐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혀 게임을 해 본 적 없는 플레이어라거나, 또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 플레이어라면, 이러한 안티플롯은 힘을 잃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짧은 농담밖에 되지 못하는 거죠. 길게 갈 동력이 없으니까요.

 

물론, 여전히 이건 좋은 게임입니다. 솔직히, 이름이 멋있기도 하고요. 추천할 만한 게임이냐고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안티플롯 게임이라고는 평가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평가는 개인의 호불호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